24/10/2026
새벽 4시, 고단한 몸을 일으켜 말아 쥐었던 김밥 한 줄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건넬 수 있었던 삶의 전부였습니다.
김밥
서울의 한 고등학교 근처 골목길, 11월의 차가운 아침 공기가 옷깃을 시리게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17살 민우는 가방을 둘러매며 대문을 열었습니다. 손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은박지에 단정하게 싸인 김밥 한 줄이 들어 있었습니다.
"민우야, 날씨 많이 춥다. 꼭 남기지 말고 따뜻할 때 먹어야 한다."
주방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민우는 대답 대신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어머니가 말아준 김밥은 늘 모양이 투박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사 먹는 화려한 프리미엄 김밥이나 편의점의 깔끔한 도시락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옆구리가 터지기 일쑤였고, 들어간 반찬이라곤 단무지와 계란 지단, 그리고 짭조름하게 조린 우엉이 전부였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민우의 가슴은 언제나 답답하게 죄어왔습니다.
유명 브랜드의 맛있는 도시락을 꺼내놓는 친구들 사이에서, 민우는 은박지 소리가 날까 봐 조심스럽게 가방 뒤로 김밥을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야, 김민우! 너 오늘도 그 집김밥이냐? 옆구리 다 터졌네!"
짝꿍의 무심한 한마디에 교실 안의 몇몇 아이들이 킥킥대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민우의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붉어진 얼굴로 은박지를 다시 뭉쳐 가방 속에 쑤셔 넣은 민우는, 그날 이후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그 김밥이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짐처럼 느껴졌습니다.
11월의 어느 유난히 매서운 바람이 불던 수요일 아침이었습니다.
학교 정문 앞, 대형 쓰레기통 세 개가 늘어서 있었습니다.
민우는 등교하는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가방에서 은박지에 싸인 김밥을 꺼내 들었습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는 아직도 따스했습니다. 어머니가 새벽같이 일어나 고소한 참기름을 바르며 싸주셨을 그 온기였습니다.
하지만 민우는 망설임 없이 김밥을 쓰레기통 깊숙한 곳으로 던져버렸습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김밥은 어두운 쓰레기더미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민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가방이 가벼워진 만큼 마음도 가벼워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파왔습니다.
방과 후, 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친 민우는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집안은 무거운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우리 아들 왔니?" 하며 마중 나오셨을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방 쪽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민우는 조용히 주방으로 걸어갔습니다.
어두컴컴한 주방 식탁 앞에 어머니가 홀로 앉아 계셨습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머니는 어깨를 가늘게 떨며 조용히 울고 계셨습니다.
식탁 위에는 아침에 민우가 쓰레기통에 버렸던 바로 그 은박지 김밥이 구겨진 채 놓여 있었습니다.
"엄마...?"
민우의 목소리에 어머니가 황급히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들었습니다. 붉게 짓무른 눈으로 어머니는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려 애썼습니다.
"왔니, 민우야... 배고프지? 엄마가 얼른 따뜻한 밥 차려줄게."
"엄마... 이거 왜 여기에 있어?"
민우는 떨리는 손으로 식탁 위의 구겨진 은박지를 가리켰습니다. 어머니는 잠시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넣으시더니, 참았던 눈물을 다시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선생님한테 드릴 서류가 있어서 학교에 잠깐 갔었단다. 지나가는 길에 너 얼굴이라도 멀리서 보고 싶어서..."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거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셨습니다.
"쓰레기통 옆을 지나가는데... 익숙한 은박지 하나가 보이더구나. 혹시나 해서 꺼내봤는데... 네 김밥이었어."
민우는 머리를 무언가로 거세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온몸의 피가 식어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민우야... 엄마가 미안하다. 다른 집 부모들처럼 예쁘고 맛있는 거 못 싸줘서 정말 미안해."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민우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 손은 오랜 세월 식당 일로 마디가 굵어지고 터져 있었습니다.
"엄마가 가진 게 없어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준비해도 해줄 수 있는 게 그 김밥뿐이네. 엄마는 그저... 우리 아들 아침 안 굶기고 싶어서 매일 정성껏 싸준 건데... 그게 우리 아들을 그렇게 창피하게 만들 줄은 몰랐어. 정말 미안하다, 아들아..."
어머니의 진심 어린 사과에 민우의 가슴은 갈갈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철없는 부끄러움 때문에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을 쓰레기통에 쳐박았다는 사실이,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엄마... 아니야... 내가 미안해, 엄마... 내가 잘못했어..."
민우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민우의 등을 따뜻하게 쓸어내려 주셨습니다.
"괜찮다, 민우야. 다 괜찮아. 내일은 엄마가 더 맛있게 해줄게. 일찍 자거라."
그날 밤, 민우는 내일 아침이 오면 어머니에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겠다고 다짐하며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알람 소리에 민우는 눈을 떴습니다.
시계는 이미 오전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어머니가 몇 번이고 들어와 깨우셨을 시간이었지만, 집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엄마? 엄마, 왜 안 깨웠어?"
민우는 옷을 대충 입고 주방으로 뛰어나갔습니다. 하지만 주방 불은 꺼져 있었고, 가스레인지 위에도 아무런 온기가 없었습니다.
민우는 불안한 마음으로 안방 문을 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불을 끝까지 덮은 채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계셨습니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엄마... 해 떨어지겠다. 빨리 일어나... 나 학교 늦겠어."
민우가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아무런 대답도,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평소 앓고 계시던 지병을 가족들에게 숨겨오셨고, 그날 밤 조용히 세상을 떠나신 것이었습니다.
비명 같은 울음을 터뜨리던 민우의 눈에, 주방 식탁 위에 놓인 은박지 뭉치가 들어왔습니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김밥이 정갈하게 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은박지 옆에는 어머니의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힌 작은 메모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 아들 민우에게.
민우야, 이게 엄마가 싸주는 마지막 김밥이 될 것 같구나.
어제 일은 마음 쓰지 마라. 엄마는 우리 아들 원망 안 해.
더 예쁜 김밥 못 싸주고 떠나서 미안하다.
남기지 말고 꼭 다 먹고 가라.
사랑한다, 내 아들.'
민우는 식탁 자리에 주저앉아 어머니의 마지막 김밥을 끌어안았습니다.
식어버린 은박지를 입에 대고 김밥 한 조각을 삼키며, 민우는 통곡했습니다.
"엄마... 미안해요... 엄마, 사랑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하지만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어머니에게 닿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어머니의 마지막 사랑은, 그렇게 차가운 식탁 위에서 영원히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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